부산광역시 최대 조직인 칠성파 두목 이강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인정한 몇 안 되는 7대 두목 중 한 명이죠. 칠성파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유오성 배우가 출연한 영화 '친구'가 칠성파 이야기라고 합니다. '범죄와의 전쟁' '마약왕' 등 여러 영화에서 모티브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은 야쿠자와 의형제를 맺으며 부산의 군소 조직을 통일시키고 일인자가 된 이강환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칠성파로 애국?
칠성파는 원래 두목 이강환이 세운 조직이 아니고 이강환의 손위 동서가 물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카리스마와 통솔력이 필요했을 그에게 위기도 몇 번 찾아옵니다. 이런 부분에 이야기는 조금 뒤에 나옵니다.
칠성파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일본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그래서인지 실제 영화 '마약왕'의 주인공이었던 이순삼, 실제 이름은 이황순이죠. 이황순이 찾아와 동업하자고 제안합니다.
"애국이 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애국 아니겠나" "여태까지 우리가 일본에 당한 게 얼마인데" "뽕을 일본에 팔면 이게 바로 애국이다"하고 진행되었지만 체포당하고 5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비해 낮은 형량이었죠.
이강환 모티브
영화 '친구'는 칠성파의 이야기로 나왔습니다. 굉장히 미화가 많이 되었던 영화죠. 재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찾아봤으나 실제 이강환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영화는 유오성이 굉장히 강한 일인자로 나오지만 사실 장동건의 역할에 실존인물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영화 '친구' 유오성이 보스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주봉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사람이 이강환의 모티브라고 합니다.
야쿠자와 의형제 / 강호동 사건
각종 이권 싸움을 하던 이강환은 체포당하고 5년 정도 살다 나오니 부산에는 수십 개의 파가 만들어졌고 그중 옥중에서 만난 새로운 지인과 함께 칠성파 간부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의형제를 맺고 한구에서도 의형제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행사에서 강호동과의 인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야쿠자와 일본에서 의형제를 맺고 한국에 넘어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최초의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이 사건으로 강호동이 포착되었고 선수 시절 깡패가 아니었냐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강환은 민속씨름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었고 강호동의 감독 김학용도 참석했습니다. 씨름선수였던 강호동은 "야쿠자, 건달보다 제일 무서운 사람은 감독님이다" "우리 감독님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간 것뿐이었고 그 자리가 그런 자리인지 몰랐다"라고 합니다. 아무튼 강호동과는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신 칠성파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으로 서방파 김태촌을 시작으로 조양은과 같은 거물급 두목들이 체포되고 이강환도 체포되었습니다. 그렇게 길고 긴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그가 긴 시간 조직에 없는 동안 이강환의 조직 운영 노하우를 모두 알고 있던 이인자 김 모씨는 신칠성파를 세우며 조직원 3분의 1을 흡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아챈 이강환은 구속 중에도 심복들을 시켜 작업지시를 내리고 신 칠성파를 와해시키고 김 모씨를 은퇴시켰습니다.
타고난 배짱
이강환은 요정을 운영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릴 적에는 몸이 많이 약했다고 합니다. 소아마비를 겪어서 한 쪽팔에 이상이 있을 정도로 몸이 많이 불편했다고 하죠.
체구도 마른 편이어서 친구들과 다툼이 있으면 늘 맞고 왔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강환의 어머니는 왜 맞고 다니냐며 맞고 오지 말라고 했고 이후에는 수많은 사고를 쳐서 뒷수습을 어머니가 다 해 주었다고 합니다.
담력이 매우 강해서 휠체어를 끄는 요원부터 모든 보디가드가 그를 습격하려고 했으나 쫄지 않는 그의 행동은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며 오히려 배짱을 부렸다고 하죠.
그렇게 그들은 그의 배포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기질자체가 이쪽 세계에서 막강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주먹보다는 돈이니까요.
동성애자
나이가 들고 평소 지병도 있고 아플 때마다 간병인을 고용했습니다. 간병인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죠. 휠체어를 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 이강환은 상대 남성에게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저항할 수 없게 "나 칠성파 이강환이야" "신고하면 네가 어디에 있던 잡을 수 있다"라고 협박했죠. 이 사건으로 인해 불구속 입건되었으나 합의로 끝났다고 합니다.
상징적 두목
나이가 들고는 실질적으로는 조직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상징적 두목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강환이 조직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도 경찰에게 일거수일투족 감시받았었죠.
의외로 소박한 면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이강환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많은 부하들을 참석시키지 않았고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범죄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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