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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야기

복서 '김득구' 그의 이야기

by 가제자 2023. 4. 2.

1982년 동양챔피언 복서와 세계챔피언 복서가 대결하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모여 복싱방송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14라운드가 김득구 선수 복싱의 마지막 라운드였습니다. 비록 그는 세계 제패 목전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무명의 복서가 전 세계 복싱팬들에게 가슴속에 투혼이라는 단어를 새겨주고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2002년 곽경택 감독이 만든 유오성 배우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 '챔피언'은 김득구의 삶과 죽음을 다뤘던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영화 챔피언

 

김득구 선수가 활동할 당시에는 어느 집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서 달러도 벌어들이고 평생 고된 일을 하며 평생 자식 뒷바라지하던 그 시대 부모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에서 가정에서 그런 역할을 한 선수가 바로 김득구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복서 김득구 선수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 어린 시절과 복싱의 시작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을 합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새아버지의 성인 '김'으로 개명하여 김득구로 살았습니다. 배 다른 형제들이 김득구를 괴롭히고 새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가출을 하게 되고 서울에 상경하게 됩니다. 김득구는 14살 무렵 남들과 같이 공부해야 할 시기에 무작정 서울에 상경을 해 돈을 벌어보기로 합니다. 신문배달,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볼펜장수, 껌팔이 등 밑바닥인생을 전전하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악착같이 공부해서 검정고시에 합격합니다. 이때부터도 그랬는지 타고난 끈기와 열정, 투지는 엄청났었고 이런 열정을 복싱에 쏟는 계기가 생깁니다.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TV속 권투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길 전봇대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꿈이 있는 자여, 오라' 복싱을 배워 세상에 대한 분노를 건전하게 푸는 방법을 익히게 되고 이때부터 김득구의 인생은 시작됩니다. 김득구가 들어간 복싱체육관은 그 당시 유명한 박종팔 선수가 있던 체육관이었습니다. 4년 동안 17승 1패 1 무승부를 거둔 김득구는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과 동양챔피언까지 됩니다.

 

 

▶ 맨시니와의 세계 챔피언 전

김득구가 동양챔피언, 한국챔피언이라는 소식이 전 세계에 보도가 됩니다. 해외 ESPN과 각종 언론사들은 김득구는 동양챔피언, 한국챔피언은 물론이고 세계챔피언까지 될 수 있는 실력자라고 방송을 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동양에서 챔피언은 맞지만 세계 챔피언은 아직 아니지 않냐는 말이 나왔고 세계 팬들과 언론사 벙송국은 김득구의 실력을 더 보고 싶었고 곧바로 매치가 잡히게 됩니다. 세계 챔피언 맨시니 선수와 일정이 잡기게 됩니다.

 

당시 맨시니 선수와 대결이 성사되는데 어떤 논란으로는 챔피언 맨시니 선수 롱런의 발판이 되는 대회 흥행을 위한 희생양을 찾은 선수가 김득구라는 소리가 있었고, 김득구에게 불리한 경기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맨시니의 실력은 상당했다고 합니다. 한편 김득구가 이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맨시니 선수가 강하긴 해도 아시아권 선수를 상대해보지 못해 그들의 투지와 무서움에 대해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득구도 느꼈는지 이런 말을 합니다. "이 경기에서 패한다면 절대 두 발로 걸어 내려오지 않겠다." 그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훈련을 합니다. 

 

같은 체육관에 있던 박종팔 선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맨시니 그리고 나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다"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각오가 단단했다고 합니다. 김득구 선수는 평소 동양 챔피언을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성냥각으로 만든 관 모양을 만들어서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고 어떤 경기든 죽을 각오로 임했다고 합니다. 

 

김득구 경기

 

 

▶ 죽을 만큼 이기고 싶었던 김득구

김득구 선수는 미국으로 떠날 당시 어머니에게 이기고 살아서 돌아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맨시니와의 경기 전날 그의 호텔 방에는 '죽느냐 사느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살아서 이겨야 했던 김득구는 가난도 가난이지만 약혼녀의 뱃속엔 임신을 했었고 세계 챔피언이 된다면 체육관을 차려 가족끼리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살아갈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더욱 김득구 선수는 목숨 걸고 훈련했고 훈련 중에 체중 조절이 너무 힘들었던 김득구는 훈련 때 체력을 너무 많이 썼는지 몰라도 경기 후반부에 평소보다 체력이 급격하게 빠집니다.

 

경기는 치열했습니다. 맨시니 선수가 경기가 끝나고 글러브를 벗어 보니 맨시니 선수의 왼 주먹이 부었을 정도로 강펀치를 많이 날렸고 초반에는 맨시니 선수도 김득구 선수에게 고전을 많이 했지만 이후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체중조절 때 너무 힘들었던 김득구는 급격한 체력저하가 옵니다. 김득구의 체력저하의 원인으로 맨시니 선수의 왼손 훅을 맞으며 김득구 선수는 그대로 쓰러집니다. 병원에서 뇌사 상태에 판정을 받고 김득구의 어머니는 김득구의 산소호흡기 해제를 동의함과 동시에 김득구 선수는 대한민국의 별이 됩니다.

 

돌주먹 박종팔 선수의 증언에 따르면 마지막 경기인 맨시니 선수와의 경기 전에 박종팔 선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세계 챔피언 벨트를 따지 않으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 박종팔 선수는 김득구를 다시 만난다면 왜 그런 약속을 지켰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합니다. 

 

 

▶ 김득구의 죽음  이후 

맨시니 선수는 자기가 때려죽인 것이라고 자책하고 큰 우울증이 와서 한동안 경기를 가지지 못했고 복싱을 출전할 때는 복싱스타일이 저돌적인 인파이트 복싱스타일에서 히트 앤 런 소극적인 포인트 따기 복서로 변했고 김득구의 어머니는 "가난을 물려준 것은 내 잘못이다. 득구는 나 때문에 죽은 것이다."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경기 심판을 봤던 리처드 그린 또한 "심판을 제대로 못 본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하고 경기가 끝나고 7개월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김득구 선수가 세상을 떠나고 복싱 룰이 바뀝니다. WBC는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였고 계체량 시기나 경기 전 의료검사도 철저해졌습니다. 게다가 경기장에서 담당 의사가 선수의 건강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닥터스탑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둡니다. 

 

김득구

 

현재 김득구의 유가족인 아들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아버지이지만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로 살겠다고 노력한 끝에 치과의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맨시니는 "잘 자라줘서 고맙다."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준 것 같아 정말 고맙다."라고 밝혔고 이 경기로 인해 김득구 선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복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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