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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야기

전설의 주먹 불사조 '박현성' 그의 이야기

by 가제자 2023. 4. 2.

실전 권투라고 불리는 '권도'의 창시자 박현성은 '피닉스 박'이라고 불립니다. 80~90년대 헝그리 정신을 담은 스포츠가 바로 권투입니다. 충남 대천, 그곳은 여러 권투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당시 가장 유명한 선수가 박현성 선수였습니다. 전국체전 우승, 86년 아시안게임과 87년 서울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때 각각 2위를 입상하며 올림픽의 꿈이 좌절됩니다. 배운 것은 오직 운동뿐이었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링의 황제로 살 것인가 밤의 황제로 살 것인가. 그렇게 밤의 황제로 지내다가 반대파의 공격으로 인해 아킬레스가 잘리고 분신을 선택하게 됩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박현성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피닉스 박현성, 수많은 제자들도 양성했던 박현성의 이야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불사조

 

 

▷ 어린 시절

박현성은 1968년 12월 2일 충남 보령 출생으로 어릴 적에는 반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만큼 머리도 비상했고, 운동신경도 좋았습니다. 이런 운동신경으로 누가 더 강자인가 겨뤄보는 호기심은 남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사고를 많이 쳐서 여섯 번의 전학을 다녀야 했습니다. 권투를 바로 배운 것이 아니었고 핸드볼을 처음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고등학교 학생들과 싸워 교무실에 들어가 체육선생님에게 혼이 나게 됩니다. "현성아 이렇게 사고 친 거 한두 번도 아니고 소년원 가야 되는데 네가 그냥 운동하겠다고 하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주겠다"라고 그렇게 권투를 배워 전국체전 우승, 아시안게임, 올림픽 선발전에서 각각 2위를 입상합니다. 원래 꿈은 세계챔피언인데 2위라니 꿈은 죄절되고 큰 고민에 빠집니다. 

 

박현성

 

 

▷ 밤의 황제 그리고 아킬레스

링의 황제로 살 것인가, 밤에 황제로 살 것인가. 결국 밤에 황제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박현성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니 선배들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생긴 것도 남자답게 잘 생겼고 남자애가 복싱도 잘하니 선배들에게는 어딜 가나 박현성 자랑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음지의 생활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복싱할 때 이렇게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 없었는데 그런 사랑을 음지에서 받게 됩니다. 그렇게 25세가 되던 무렵 충남 대천에선 박현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반대파 사람들도 박현성에게 깍듯하게 대했습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이 존재하듯이 인터뷰 중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내 앞에서 인사 똑바로 하지 않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시, 링 위에 올려놓고 맨주먹으로 스파링 했다." 그렇게 악명 높은 생활이 지속되고 박현성을 주군으로 모시는 동생들과 함께 룸을 빌려 술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던 중 옆 방의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 탓에 이야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박현성은 오른팔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옆방 가서 내가 좀 오란다고 그래"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박현성은 오른팔에게 똑바로 전달한 거 맞냐고 내가 직접 가서 이야기하겠다며 옆방의 문을 열고 이야기합니다. "술을 마시려면 조용히 마셔야지 니들 나 누군지 모르지?"라는 소리와 함께 혼자 네 명을 상대해서 쓰러뜨리게 됩니다. 

 

다음날 똑같은 장소에서 술을 먹고 있었는데 취기가 어느 정도 올라올 무렵 부르지도 않았는데 웨이터가 문을 똑똑 두드립니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성인 남자들이 찾아와서 깍듯하게 인사하며 하는 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형님 칼 받으십시오" 그중에 반대파 칼잡이로 유명했던 스카페이스도 이었습니다. 이후에 박현성은 "어제 그 일 때문에 그런 거냐? 밑에 동생들은 보내줘라, 죄 없다." 마지막 잔을 비우고 박현성은 "내가 갈까? 네가 올래?" 그런 패기에도 당황하지 않고 스카페이스는 박현성의 아킬레스를 공격합니다. 과다 출혈 때문인지 죽기 직전에 느끼는 감정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눈앞은 맑아졌고 정신이 또렷해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현성

 

 

▷ 불사조의 복수

이제 다시 링 위에 설 수도 없고 다시 조직생활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처지가 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가 수치심으로 몰려왔습니다. 소주 두 병을 원샷 후에 미리 준비했던 기름을 몸에 붓고 불을 붙입니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고 합니다.  동생이 형의 비명 소리를 듣고 구했습니다. 결과는 몸의 93%가 다 타버렸고 불구덩이에서도 살아남은 그는 불사조로 다시 태어납니다. 

 

30여의 수술, 그리고 재활치료, 재활운동을 거쳐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는 있었습니다. 스카페이스가 찾아와 박현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 질렀다면서요? 에이 아직 안 죽었네" "형님, 열심히 살아보세요. 겸손하게" 이 소리를 듣고 박현성은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하고 오랜 재활운동 끝에 기적적으로 일어서게 됩니다. 수소문 끝에 스카페이스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다 박현성. 빚 갚으러 왔다. 이자까지 받아라" 그렇게 복수가 끝이 나고 감옥에 다녀옵니다.

 

박현성과 제자

 

 

▷ 박현성의 제자

실제로 싸워본 사람들은 압니다. 권투가 얼마나 위협적인 운동인지. 그것을 실전 권투로 만든 것이 박현성 관장이 만든 '권도'라고 합니다. 이종격투기면 이종격투기에 맞게 권투면 권투에 맞게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겉으로는 강한 스승이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약한 남자였습니다. 여성 제자들 중에는 대표적으로 소민경 선수, 밀리언달러 베이비 민현미 선수, 남자 제자는 서철 선수가 유명합니다. 영화 '주먹이 운다'의 실존인물입니다. 모든 제자들은 좋은 성적을 냅니다. 그리고 당시 최강으로 불렸던 데니스 강 선수도 박현성 관장을 찾아 조언을 얻었습니다. 데니스 강 선수는 줄리엔 강의 친형입니다. 여러 선수들을 키워냈는데 그 비결은 제자들에게 굉장히 무섭게도 가르쳤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랑으로 감싸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분노를 열정으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박현성

 

불사조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꺼졌습니다. 가족과 제자들을 두고 2014년 7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없습니다. 2013년 7월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링'이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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