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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야기

가수이자 배우 '엄정화' 그녀의 이야기

by 가제자 2023. 4. 21.

엄정화는 1969년 8월 17일 생으로 키 164cm, 몸무게 47kg, 혈액형은 A형이다. 1992년 영화 '결혼 이야기'로 데뷔해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로 수많은 여가수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의 섹시 아이콘이다. 한국의 마돈나라고도 불리며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크게 성공한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오늘은 엄장화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엄정화

 

 

◆ 한국의 마돈나

한국의 마돈나, 한국 가요계의 여왕 등의 수식어와 더불어 음반과 연기 두 영역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둔 연예인이다. 이 분야에서 엄정화와 비교되는 여자 연예인으로는 장나라, 이정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사실 배우로서 흥행적인 면에서는 '명랑소녀 성공기' 등의 장나라가, 비평적인 면에서는 '꽃잎' 때무터 이정현이 좀 더 앞서는 편이고 가수로서도 장나라는 '장나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연말 가요대상을 석권했으며 이정현은 '세기말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엄정화의 타고난 카리스마, 이미지 메이킹과 더불어 중간에 중국 활동에 치중하여 국내 커리어에 공백이 생긴 장나라, 이정현보다는 꾸준하게 한국에서 활동하며 가수와 배우로서 커리어를 꽉 채운 엄정화가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더 높게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남자 연예인 중에 엄정화와 비견되는 연예인은 김민종, 임창정 등이 있다. 

 

 

◆ 엄정화의 어린 시절

엄정화는 1969년 8월 17일,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남동생이 배우 엄태웅이라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엄정화의 끼는 학창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하는데 특히 북원여자고등학교로 전학 와 학창 시절에도 노래 잘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학생이었으며 학창 시절 소풍이나 장기 자랑시간에는 친구들의 신청곡이 밀릴 정도였고 노래와 춤, 친구들과 노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어머니는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1989년 MBC 합창단의 오디션을 합격하여 MBC 합창단 12기 커리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엄정화

 

 

◆ 신해철의 선택과 섹시콘셉트

1993년에 발매한 1집 'Sorrowful Secret'에서 그녀가 출연한 유하 감독의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음악 감독이었던 신해철의 곡을 받아 OST의 성격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음반 판매량으로 겨우 8만 장을 기록해서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더라도 영화에서 엄정화가 맡았던 카페 가수 캐릭터를 기반으로 삼아 당시 대세였던 강수지, 하수빈을 위시로 하는 청순가련형 여가수들과 차별화된 몽환적이며 에로틱한 콘셉트로 공략을 시도해서 군부대를 중심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 덕분에 그녀는 가수 데뷔 첫 해부터 '군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수'로 선정되는 등 섹시 디바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점차 엿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곡은 데뷔 시절 엄정화라는 가수의 고유 콘셉트를 정확히 잡아준 가이드라인 같은 곡이어서 엄정화 본인이 매우 애착을 가진다고 KBS 불후의 명곡에서 밝혔는데 사실 이 콘셉트는 다름 아닌 신해철이 직접 잡아준 것이라고 한다. 신해철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신해철이 본 엄정화의 첫인상은 섹시와는 거리가 먼 청순한 느낌 어었고 소속사 측도 가요계의 대세였던 청순가련 여가수 콘셉트로 엄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고 있었으나 엄정화를 본 신해철은 그녀의 에로틱한 포텐을 간파하고 앞으로 청순가련 트렌드는 저물고 남자들이 여가수의 섹시콘셉트를 보면서 환호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으면서 엄정화의 내재된 끼를 끌어내기 위해 혼도 많이 내고 북돋아주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엄정화

 

 

◆ 엄정화의 퍼포먼스

1997년에 발표한 3집 '후애'에서는 주영훈이 작사/작곡 한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데뷔 이후 최초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기록을 안겨주었고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인기 여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장미 가시를 상징하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 짙은 화장, 검은색 무대 의상 등 아방가르드한 무대 스타일로 섹시함을 포인트로 잡은 이 노래로 그녀는 각 음반 및 가요 차트를 휩쓸었다.

 

이때를 시작으로 그녀는 여러 무대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1998년에 출시한 4집 타이틀곡 '포이즌'으로 활동할 때는 당시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5대 5 가르마의 스트레이트 단발머리를 선보이며 패셔니스타답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여담으로 코요테의 김종민은 이 곡에서부터 엄정화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하여 준수한 외모 덕분에 엄정화의 댄스 파트너 급으로 급부상하며 개인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 엄정화의 패션(물병헤드폰)

1999년 발매된 5집에서는 3집과 4집에서의 연전연승으로 솔로 여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엄정화가 당시 테크노 트렌드에 발맞추어 귀마개에 물이 들어가 있는 일명 물병헤드폰을 쓰고 나오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까지 승화시키는 등 대 히트를 기록했으며 음반 판매량은 엄정화 역대 앨범 사상 최고 수준인 55만 장을 기록할 정도로 그녀는 이 앨범에서 인기도의 정점을 찍었다. 지금은 굉장히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물병헤드폰은 사실 한국의 레전드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걸그룹 디바도 이상봉의 패션쇼를 본 후 이를 사용하려 했지만 엄정화가 먼저 하고 나와하지 못했다고 한다. 

 

엄정화

 

 

◆ 그녀의 리얼 속옷 무대

엄정화의 퍼포먼스는 화제가 되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것은 tvN 개국 방송의 'Come 2 Me'무대였다. 당시 볼 수 없었던 속옷 의상을 입고 무대를 꾸며 연일 엄정난 이슈가 되었었다.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무대가 끝나고 '노골적인 의상에 눈을 둘 곳이 없었다'는 악평이 이어졌으며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 섞인 말들도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레이디가가'가 이 같은 퍼포먼스로 주목받고 있던 터라 엄정화의 무대를 본 팬들 중에는 '대단하다'라고 극찬한 이들도 있었다.

 

엄정화는 몇 년이 지나고 당시 속옷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해당 무대는 본래 다른 의상을 입고 나가려고 했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 바람에 코디가 사 온 실제 하의 속옷을 입고 나간 것이라 밝혔다. 속옷 느낌이 나는 옷이 아니라 진짜 속옷이었다는 발언에 더욱 놀라움을 샀다. 속옷 때문에 놀란이 있긴 했지만 이를 통해 퍼포먼스를 의한 의상이 한결 자유로워졌으며 이후 섹시 콘셉트의 걸그룹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여담으로 이후 엄정화는 속옷 사업을 시작하면서 3개월 만에 매출 100억을 찍으며 속옷 사업으로 대박을 치기도 했다. 

 

 

◆ 방송금지 처분

4집 후속곡으로 박진영이 작사/작곡한 '초대'는 파격적인 노출 수준의 뮤직비디오 부채를 활용한 섹시 안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중간에 상체 누드로 엎드려있는 엄정화의 등을 웬 할아버지 스님이 나와서 밀어주신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엄정화가 상반신 누드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 나와 뮤직비디오가 일부 지상파 방송에서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다고 한다. 

 

엄정화

 

 

◆ 배우도 성공한 가수

엄정화는 대한민국의 대표 섹시 아이콘임과 동시에 배우로서도 크게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게 가수로서 배우로서 모두 인정받은 스타라고 할 수 있는데 배우로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연부터 연쇄 살인범에 이르기까지 연기의 폭에 있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코미디, 멜로 정극, 스릴러, 액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맡은 역할의 폭도 상당히 넓다. 빼어난 대사 전달력, 우아함과 섹시함을 오가는 음색을 겸비한 오디오 역시 그녀의 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애초에 연기자로 데뷔했고 배역을 가리는 일이 없어 다방면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다채로운 연기력 덕에 50대에 접어들어서도 주연을 놓치지 않고 있다.

 

2013년 11월 기준 총 관객수 약 3천만 명으로 최고 흥행 여배우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엄정화의 배우 이력은 알아도 꽤 흥행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은 대중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물론 천만 영화 해운대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댄싱퀸을 히트시키는 등 배우로서 흥행력도 꽤 있는 편이다. 연기력의 폭이나 캐릭터의 범위가 넓지만 의외로 사극/시대극에는 출연한 적이 없다고 한다. 

 

 

◆ 갑상선암

2000년대 초반까지 시간이 갈수록 배우로서의 행보는 활발한 반면 가수로서는 자주 활동하지 않았는데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를 통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엄정화는 2008년 'DISCO' 이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갑상선암 수술 중 성대를 다쳐 왼쪽 성대 신경이 마비되어 지금도 성대가 제대로 닫히지 않는 상태였던 것이다.

 

수술 직후에는 목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났기에 정신병이 오는 것 같았다고 할 만큼 힘들었으며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나마 목소리가 어느 정도 돌아와 연기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지만 이 일이 있은 후의 정규 앨범은 10집 한 장뿐이며 엄정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파, 솔, 라 음역대를 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엄정화

 

 

◆ 연예인의 연예인

여자 연예인들, 특히 연기와 가수 커리어를 같이 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롤모델을 꼽으라면 독보적으로 많이 꼽히는 연예인이다. 거의 롤모델 천하통일 수준으로 포털 뉴스에 엄정화 롤모델만 쳐보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연예인부터 신인 그룹까지 롤모델로 꼽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예 신문 기사에서 또 누군가가 엄정화를 들먹이면 "신인 여가수들이 대부분 그렇듯 엄정화를 롤모델로 언급한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별히 롤모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50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엄정화에 대한 감정을 존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공개적으로 표현한 경우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보아, 현아 등의 가수를 비롯하여 천우희, 정려원 등의 배우 등 폭넓은 존중을 받고 있다. 연예계를 꿈꾸는 이라면 최종 목표일 영화배우, 솔로가수 양 부문 모두에서 대성공을 거뒀으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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