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어린 시절
김연아는 여섯 살 때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었다고 합니다. 집 근처였던 과천 시민회관 실내링크에서 방학 특강반에 등록한 김연아는 당시 피겨의 여왕으로 불렸던 '미셸 콴'의 비디오를 흉내 내며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연아의 재능을 눈 여겨본 코치가 '점프력이 뛰어나고 피겨감각이 남다른데 선수로 키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연아처럼 재능 있는 아이'를 처음 본다는 코치의 말에 본격적으로 피겨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연아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남달랐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시절 김연아는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국가대표 피겨선수들과 함께 피겨레슨을 했고 김연아는 그 언니들과의 경쟁에서도 악착같이 이기려고 하는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는 김연아를 '지는 걸 못 참는 꼬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나면 링크장의 얼음을 스케이트로 찍는 버릇이 있었는데 빙판이 상하면 다른 선수들이 스케이트를 탈 때 위험하기 때문에 김연아의 어머니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스케이트를 벗기고 빙판 주변 100바퀴를 돌라는 일종의 훈육을 하기 시작했는데 김연아가 힘들어하면서도 100바퀴를 쉬지 않고 돌자 김연아의 어머니조차 김연아의 근성에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김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액셀을 제외한 다섯 가지 트리플 점프를 다 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김연아의 완벽한 연기가 수 없는 연습을 통한 '교과서적인 점프'로 기본을 다졌기 때문에 점프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김연아는 경기에서 감정 표현이나 음악과의 조화 등 연기적인 부분에 신경을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는 코치가 김연아가 트리플 러츠를 하도 많이 뛰기에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 봤는데 다른 선수들은 같은 시간에 30번도 뛰기 힘든 점프를 100회도 넘게 뛰는 바람에 65회까지 세다 포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김연아는 곧 전국소년체전 1위에 올랐고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김연아의 어머니는 '김연아가 국내용이 아닌 국제용'이라는 코치의 말에 한 달에 700만 원이 넘는 캐나다 전지훈련을 보내며 과감히 김연아에게 투자했고 이때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처음 만나 이른바 '드림팀'이라 불리게 될 팀이 결성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동량이 늘어나면서 순조롭던 훈련에도 슬럼프가 찾아와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는데 '하기 싫다'라고 하는 김연아와 '그럴 거면 그만둬라'라는 실랑이를 하면서도 김연아의 어머니는 김연아가 피겨를 절대 그만 두지 못할 것임을 느꼈다고 합니다.
▶소치 동계올림픽 논란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에서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트니코바는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쇼트 프로그램 최고 점수가 202.36이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올림픽에서 22.23점을 올린 224.59점을 받았고 프리 프로그램은 131.63에 불과했지만 역시 한 달 만에 149.95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연아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의 150.06점과는 불과 0.11점 차이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김연아는 단 한 개의 실수도 하지 않고 받은 점수였지만 소트니코바는 실수를 하고도 0.11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트니코바에 점수를 퍼준 것으로도 모자라서 김연아는 전체적으로 점수를 덜 받았는데 프리 프로그램에서 소트니코바와의 기술 점수가 5.85점이나 차이가 났고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리며 항상 최고 등급의 가산점을 받았던 김연아에게 무려 0점을 주며 점수의 평균을 낮추게 한 심사위원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나 다를까 그 심판진 중 한 명이 러시아 빙상연맹 사무총장의 부인이었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 심판의 신분으로 소트니코바와 마치 '해냈다'는 느낌의 포옹을 했고 최종 순위를 결정짓는데 영향을 미쳤던 테크니컬 컨트롤러인 '알렉산더 라커닉'은 무려 러시아 빙상연맹에서 부회장을 했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소트니코바가 확실히 본인의 실력에 비해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인 것은 맞지만 김연아를 이길 수 있는 정도의 경기였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에 미국 ESPN공식 홈페이지에서 실시한 투표에선 무려 90% 이상의 투표자가 김연아의 손을 들어줬고 프랑스 국영방송 투표에서는 무려 97%가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이 부당하다고 했으며 미국 피겨계의 레전드인 '딕 버튼'은 소치올림픽 이후 자신의 SNS에 '연아야 너는 진정한 챔피언이야'라는 글을 올리며 김연아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후 소트니코바는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열린 갈라쇼에서 편파판정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커다란 녹색 깃발이 얼굴에 감기고 스케이트 날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등 금메달을 차지한 소트니코바의 갈라쇼 무대는 '황당한 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후에 '형광나방' '녹색어머니회' '강태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소트니코바는 자신의 본 실력이 들킬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는지 2014년 세계선수권을 불참한 것을 시작으로 모든 국제대회에 불참하다가 졸작 수준의 피겨를 계속 보여주며 부상을 핑계 대다가 2020년에 은퇴를 했다고 합니다.
▶광고 퀸
김연아는 'CF여왕'으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 김연아는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김연아라는 이름의 가치가 올라 광고하는 제품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보이며 긍정적인 이미지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연아의 하이트 맥주 CF출연이 논란이 되었는데 한국 정신중독의학회는 김연아의 맥주 광고 출연이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스포츠 스타가 주류 광고 모델을 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음주 문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했고 김연아는 맥주 광고가 비난의 대상이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학계의 조언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김연아의 맥주 광고 모델 출연을 제재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벌였는데 당시 김연아의 나이가 24살로 본인이 음주를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결국 24세 이하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주류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이 통과되었고 김연아는 아이유와 함께 광고가 중단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또한 김연아가 한참 광고 출연이 절정을 찍던 시절에는 인터넷상에서 김연아에게 '하라는 운동은 안 하고 광고만 찍는다' '김연아가 아니라 돈연아다'라며 광고를 많이 찍는다는 이유로 김연아를 비판했는데 정작 본인은 방송에 나와서 '기분은 나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광고는 한 번만 찍었는데 매일 나오는 걸 어떡하냐' '훈련은 매일이지만 광고는 하루만 찍으면 된다'라며 재치 있는 답변과 함께 굉장히 쿨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각종 대회를 휩쓰는 엄청난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피겨 스케이팅 종목 자체가 팬층도 얇고 대회 우승 상금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빙상 연맹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에 훨씬 못 미치는 지원을 받았고 오히려 빙상 연맹은 김연아의 대회 상금을 일정 부분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 특성상 선수 생활에 들어가는 돈에 비해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벌 수 있는 돈이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고 본인 훈련 비용뿐만 아니라 피겨 꿈나무들을 위한 후원까지 본인이 지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수저가 아닌 이상 들어오는 광고를 마다 할 이유는 없었다고 합니다.
김연아는 2009년 80억 원의 수익으로 여성 스포츠스타 수입 순위 5위에 올랐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2010년에는 105억을 벌어 8위, 2012년에는 102억으로 7위, 2013년에는 156억으로 6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선행과 꾸준한 기부로 자선활동 순위에도 자주 올랐는데 한 매체에서 선정한 세계 여성 스포츠선수 자선활동 순위 5위,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 영웅 29인에 올라 김연아는 본인이 광고를 선택할 때 기업의 피겨 스케이팅 후원의 조건을 걸으며 본인의 광고 출연은 훈련비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
김연아를 '행복한 스케이터'로 키우겠다는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마음에 김연아는 스승의 마음에 부응해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브라이언 오서는 일본 자본과 연관된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와 재계약을 했고 이 재계약으로 인해 일본의 주니어 선수들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서가 당시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의 코치 부임설이 불거졌고 오서와 훈련을 하기 위해 캐나다로 갔던 김연아는 일본 주니어 선수들에게 매진한 오서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안무 담당이었던 '데이비드 윌슨'을 제외하면 사실상 혼자 훈련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열린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자신이 맡은 다른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바쁜 시기였다며 불참을 했고 대외적으로도 대중들에게 김연아와 오서 코치 간의 갈등이 보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다 오서의 일방적인 결별 통보로 인해 관계가 마무리 됐는데 갑자기 오서는 언론을 통해 김연아로부터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았다며 언론플레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김연아는 SNS를 통해 '몇 달 전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불과 며칠 전 완전하게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여러분들이 아신다면 갑자기 저희가 이런 상황을 접했을 때 저희가 얼마나 당황할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그 과정을 알려드리고 싶지 않고 또한 알려드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저희들끼리의 문제이고 그냥 좋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이 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만 남게 되었는지 이제는 정말 멈추고 싶습니다'라며 오서의 그런 황당한 인터뷰에 굉장히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사실 피겨 선수와 코치 간의 지켜야 할 불문율이 두 가지 있는데 헤어지기 전에 그동안의 코치비를 전부 지불하는 것과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코치를 선임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김연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어기지 않으며 예의를 지켰지만 오서는 한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연아의 새 프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내가 본 프로그램 중 가장 환상적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은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를 뛰어넘는다' '한국 음악의 편집곡으로 구성돼 있고 한국 전통 음악인 아리랑이 피처링 돼있다'라며 김연아의 새 시즌 프로그램의 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김연아와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의 사전 동의 없이 미디어에 공개하는 것은 스포츠 지도자로서의 도덕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었고 실제로 브라이언 오서는 김연아를 코치하던 시절에 김연아의 곡의 정보를 숨기기 위해 링크장에서 크게 음악을 틀지 않고 MP3를 통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연습을 시켰을 정도로 프로그램의 공개를 일부러 늦추거나 보안이 중요한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었기 때문에 오서는 김연아와 결별하면서 피해를 주려는 의도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별 과정이 비록 깔끔하진 않았지만 서로 법적대응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 이후로도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면 밝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김연아 노래 실력
김연아는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른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가수로는 보아,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 있는데 방송이나 팬미팅에서 웬만한 가수들의 노래를 무리 없이 부를 정도이고 특히 태연의 '만약에'와 '들리나요'를 부르는 모습에 팬들은 태연이 불렀다고 해도 믿겠다며 놀라움을 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중저음이 풍부하고 고음역도 무난하게 넘기는 실력 덕분인지 이승기와 빅뱅의 응원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더니 아이유와 듀엣곡으로 부른 '얼름꽃'은 정식 음원으로 발표됐고 2014년에는 박정현과 함께 '꿈의 겨울'이라는 평창올림픽 유치 기원곡을 듀엣으로 불렀는데 그동안의 음원 수익금은 전액 피겨 꿈나무들에게 기부했다고 합니다. 김연아가 노래를 주로 연습하는 곳은 본인의 방이고 비시즌 기간에는 친구들과 노래방도 즐겨 찾을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김연아의 커리어
김연아의 영어 이름은 Yuna Kim이라고 합니다. 원래 Yun-a라고 쓰려고 했으나 여권 표기 실수로 인해 Yu-na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고 써놓고 보니 외국인들이 부르기도 쉽고 본인도 좋아해서 그대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빼어난 외모와 실력으로 국제적으로 '피겨 여왕'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구글에서 'Yuna Queen'을 검색하면 김연아로 검색이 되며 외국의 방송이나 신문에선 김연아에게 'Queen'이라는 호칭을 자주 쓰게 되었습니다.
김연아는 현역 활동 당시 데뷔부터 은퇴까지 최정점에 있었던 선수였고 기술성과 피저컬 그리고 그에 맞는 표정연기까지 완벽한 무결점으로 세계 신기록만 11회를 경신한 전무후무한 피겨 스케이터라고 합니다. 4개의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후 이 대회들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선수이자 여자 싱글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면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했고 출전했던 모든 대회에서 최소 3위 안에 드는 '올포디움'의 소유자이며 쇼트와 프리 중 하나는 반드시 '1위'를 차지했던 선수이고 토리노 동계올림픽부터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그야말로 동양의 피겨 불모지에서 10년 간 피겨계를 군림했던 레전드 선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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